어쩌다 몸에 이상이 발견되어도,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바로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짜여진 일상 속에서 틈을 내기도 어렵고, 시간 있는 휴일에는 문을 연 곳이 몇 안되지요. 그런데 모처럼 시간을 내어 유명하고 환자도 많다는 곳을 골라, 한참을 기다린 후 진료를 받는데, 어느 병원의 무슨 과로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만 듣는다면, 참 허탈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다른 문제가 생기면 모든 과가 다 있는 큰 병원으로 바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의료전달 체계로 보면 개인 주치의 격인 동네의원에서 일차로 상담하고 정밀검사나 치료가 필요하면 2,3차 의료기관으로 가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러나 각과 전문의들로 가득찬 우리나라 개원가 현실과 국민 정서적 면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형병원에서 경한 환자들로 인해 위중한 환자들의 진료가 지체되는 현실을 보고 누구나 그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막상 자신의 경우가 되면 사소한 문제라도 대형병원에서 해당 전문의사에 의해 해결되어야 마음이 든든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전문의 비율은 외국에 비해 훨씬 높고 숫자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많은 전문의들이 자기 전문분야를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원하고 있는 전문의의 입장에서는 자기 전문과목을 내세우더라도 그 분야의 환자가 많이 오지 않는다고 하고,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내 경우에는 도대체 어디를 가야 되는 지 정보를 얻기 힘들다고 합니다. 전문과목 명칭만 보아서는 그 의사가 무슨 병에 전문가인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외과의원이라고 하면 신체 외부를 보기 때문에 외과인지, 외상(다치는 것)을 전문적으로 보는 곳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필자의 병원은 외과수술 전문병원으로 대장항문병, 급성 충수염(맹장염), 탈장, 담석증, 유방, 갑상선 질환 등을 주로 수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충수염 수술을 하자고 하면 뱃속의 수술이니 빨리 내과로 보내 달라는 분들도 계시고, 유방암을 외과에서 보는 지 처음 알았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성형수술을 정형수술로 잘못 아시고 정형외과에서 쌍거풀 수술을 요구하시는 분도 계시지요. 이렇게 잘 모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저의 생각은 아직 서양의학이 도입된 역사가 길지 않았고 홍보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광고는 전문과목 명칭과 진료시간 등 몇 개 항목에 제한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질환을 보는 지에 대한 홍보는 현행 의료법상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의료업은 비영리 사업이므로 과당 경쟁과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정보화된 사회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생각하면 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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